여름이 한창인 소금강 계곡에는 연록의 물줄기가 풍성히 흐르고 있습니다. 비록 등줄기로 후줄근하게 땀이 흐른다 하더라도 숲의 내음을 담은 저 푸른 물줄기는 계곡을 찾은 사람들을 마음에서부터 시원하게 적셔줍니다. 이곳이 작은 금강이라 불리는 오대산의 소금강계곡입니다. 산을 찾아 든 이들이 감탄하게 되는 연록의 물빛은 사실은 숲의 푸른빛이 물결에 내려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산이 깊으면 계곡도 깊은 법.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 선생은 그 발문에서 “천하지형세시호산천(天下之形勢視乎山川)”이라 하였습니다. 천하의 형세를 보고 사람들은 산천(山川)이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산천은 강산(江山), 산하(山河)란 말과 함께 우리가 이 땅, 이 국토를 이르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한결같이 산과 물길을 함께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국토를 연상할 때 떠오르게 되는 장면들.. 검은 산줄기가 첩첩히 늘어선 연봉사이로 깊은 골 아래 굽이굽이 물줄기가 흘러가는 풍경은 우리의 무의식에 새겨진 이 국토에 대한 선연한 자기 인식의 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이육사 시인의 광야(曠野)에서도 산과 강은 함께 노래되는 것입니다.
.....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별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어디 이뿐일까요. 한국적 정취를 표현한 그림으로 유명한 운보 김기창 화백의 많은 그림에서도 산천(山川)은 하나의 어울림으로 표현됩니다. 그의 청산도(靑山圖) 연작은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선현들의 옛 그림에서도 산과 강은 함께합니다. 오죽하면 전통화를 산수화(山水畵로)라고 불렀겠습니까.
이처럼 산과 강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하나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그 절묘한 조화가 최고로 발현되는 곳이 오늘날 국립공원의 계곡입니다. 오대산의 소금강계곡, 설악산의 천불동, 수렴동계곡, 속리산의 화양계곡, 덕유산의 구천동 계곡 등의 수려한 풍경은 이제는 깊은 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한국 산천의 원형입니다.
이곳 소금강 지대는 오대산을 가로지르는 6번 국도를 경계로 서쪽의 월정사 지구와 대비되는 곳입니다. 서쪽의 월정사 지구가 토산(土山)으로 편마암이 중심이 된 지질 특성을 보인다면 동쪽의 소금강 지대는 금강산, 설악산과 같은 화강암의 전형적 경관을 보여줍니다.
기후로도 백두대간 산줄기를 경계로 동해안으로 지대가 빠르게 낮아지는 동쪽의 소금강권이 온난한 반면 서쪽의 월정사 지구는 대부분 해발 600m 이상의 고지대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은 추운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입니다.
소금강 계곡은 노인봉~소황병산~매봉의 백두대간 줄기와 그 지선이 동해로 뻗어 백마봉, 천마봉을 잇는 너른 품안의 수많은 계곡이 모여 형성된 물줄기 입니다. 그 품에 안긴 계곡으로 이름 붙은 것만 해도 사문다지계곡, 선녀탕계곡, 구룡폭계곡, 은선계곡이 있습니다. 노인봉에서 시작한 소금강 계곡은 총 12km에 달하나 지금은 무릉계 안쪽 8km 남짓한 내소금강만을 소금강으로 일컫고 있습니다.
소금강을 따라 오르다 보면 아름다운 소와 폭포가 연이어 우리의 시선을 잡아끕니다. 무릉계를 지나 십자소, 연하담, 식당암, 삼선암, 구룡폭, 만물상, 백운대, 삼폭포, 광폭포, 낙영폭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경치는 먼 길에 무거워질 법한 여행객의 발걸음을 가벼이 해줍니다.
개인적으로 푸른 물빛에 일렁이는 햇살을 좋아합니다. 연록의 물빛에 스민 햇살은 이미 빛으로서가 아니라 완전한 물의 한 속성으로 화하여 물의 표정을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우리의 발길은 내처 계곡가에서 머물게 되고 그 설레는 마음은 여름의 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물가의 정취를 잘 묘사한 시로 김용택 시인의 ‘그 그리운 시냇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흐르는 시내 모래 위에
물무늬처럼 이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흐르는 물 속에는 자리잡지 못한 모래알들이
그 작은 몸짓으로
빈 곳을 찾아가
반짝이며 자리잡기도 하는 몸짓들을
오래오래 보고 있었습니다
물가로 밀려난 잔물결들은
강기슭 풀밭에 가닿으며 사라지기도 하지만
허물어지지 않은 산도
저쪽 강기슭엔 있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에 어리다가
내 가슴 어딘가에 닿아
거짓말같이 번지는
물무늬 같은 사랑이
그 그리운 시냇가에 있었습니다
딱히 이제는 옛 정취를 찾기 힘든 내 고향 뒷 개울에도 시인의 표현처럼 ‘자리잡지 못한 모래알들이 그 작은 몸짓으로 빈곳을 찾아가 반짝이며 자리잡는’몸짓을 쳐다보며 어린 시절을 보낸 일군의 동심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이제 중년의 문턱에 선 그 아이들이 아직도 ‘물가로 밀려난 잔 물결들을 바라보며 ... 거짓말같이 번지는 물무늬 같은 사랑’에 가슴 설레이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소금강 청학동 계곡을 지난 물줄기는 연곡천으로 흘러들어 동해로 흐르게 됩니다. 군데군데 보가 물줄기를 가로막고 있지만 아직도 이 물길로는 어느 정도 은어가 올라온다고 합니다. 보다 자연을 배려하는 우리의 물놀이가, 내 거주지에서 잘 정화된 생활오수가, 자연생태를 충분히 고려한 세심한 하천 행정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회유어들을 다시금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어느 때 소금강 저 깊은 계곡까지 거슬러 오르며 은빛 비늘을 반짝이던 은어떼를 다시금 보았으면 합니다.
십자소의 깊은 심연을 지나 조금 가다보면 금강사가 나옵니다. 토담을 뚫고 선 소나무의 품격이 바라뵈지는 금강사 입구에는 담쟁이덩굴에 덮인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일주문으로 추측되는 이 작은 목조 건물은 일견 초라해보이지만 신갈나무가 드리우고 푸른 담쟁이잎새가 덮힌 이 여름날에는 어느 못지않게 화려해보입니다. 생명의 힘이겠지요. 지붕아래에는 오래된 공중전화 표지판이 담쟁이 덩굴에 묻혀 세월을 짐작케 해줍니다.
여름날이라 탐방로 주변에는 버섯들이 많습니다. 나무에 붙어 자라는 것도 있고 땅을 뚫고 솟은 것, 낙엽층에서 피어나는 것 종류도 많습니다. 색깔이나 모양은 또 어찌나 기기묘묘한지요. 이들 버섯들엔 먹는 것도 있고 먹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든 것을 그저 사람의 필요에 따라 판단하는데 너무 익숙해 있어 생명체 본래의 의미를 그 생명체 존재 자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데 많이 인색합니다. 그래서 식용버섯, 독버섯으로만 버섯류를 구별하는 것은 이 종족의 진면목을 이해하는데 매우 단선적인 이해를 가져다 줄뿐입니다.
버섯은 곰팡이와 함께 균류를 이루는 생물입니다. 엽록소가 없어 자체적으로 영양분을 조달하지 못해 고목이나 낙엽 등의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살아가는 생물입니다. 종류에 따라 다른 생물체와 공생관계를 이루기도 하고 어떤 것은 기생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송이버섯은 소나무와 공생관계를 이루어 살아가는 버섯입니다. 소나무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것은 송이 같은 균류가 양분과 물을 흡수하여 소나무에 전달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버섯과 같은 균류의 의의는 유기체를 자연으로 돌리는 분해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나고 죽는 생멸의 순환과정을 밟습니다. 죽은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생명체의 조직을 이루는 일부가 됩니다. 그 과정을 우리는 영양원의 순환과정이라 부릅니다. 영양원이 순환하기 위해서는 분해가 필수적입니다. 버섯은 그 과정을 맡는 족속의 대표적 고등생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학동 소금강 계곡을 따라 노인봉까지 오르는 먼 길에서 계곡만 보고 갈순 없습니다. 때로는 시선을 뭉게구름이 일어나는 하늘에 두어도 좋습니다. 그래서 만물상벼랑에 피어난 소나무가 하늘과 만난 지점에서 피어나는 한폭의 풍경화에 마음을 실어도 좋습니다. 지금은 이 경치를 하늘과 바람과 숲, 사람만이 누리지만 아마도 예전에는 비탈 벼랑을 오가는 산양도 이 경치를 즐겼을 것입니다.
산길을 가는 것은 시간을 잊으러 가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땀을 흘리며 가는 길에 마음이 허덕인다면 잠시 계곡을 바라보며 머리 위 푸른 하늘에 마음을 두며 한발을 내딛길 권고합니다. 정상이란 그렇게 가다보면 이르는 길이겠지요.
이 여름의 끝이 멀지 않은 듯 합니다. 이젠 새벽바람이 으슬하니 느껴지는 이곳 동산리에도 아직 한낮의 햇볕은 뜨겁지만 하루가 다르게 깊어가는 풀벌레의 울음소리는 멀지 않은 가을을 예감케 합니다. 이 여름 소금강의 시원한 풍경을 대하며 늦은 더위를 잠시 잊으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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